태극마크에 도전할 기회가 무려 8년 만에 주어졌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죽을 힘을 다해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천재 미드필더', '제2의 고종수', '계룡산 루니' 등 화려한 별명이 붙은 고창현(27, 울산 현대)이 이를 악물고 제주도의 칼바람을 맞아가며 굵은 땀을 흘리고 있다.
고창현은 조광래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11 아시안컵 대표팀 예비 엔트리에 들어 이번 제주 훈련에 참가했다. 누가 탈락할지 알 수 없어 최대한 제 실력을 보여준 뒤 하늘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몸상태가 꽤 괜찮은 그는 슈팅 훈련이나 미니게임에서 눈에 띄는 실력을 드러내고 있다.
공격형, 또는 측면 미드필더를 소화할 수 있는 고창현은 올 시즌 10골 5도움을 기록하며 2002년 프로 데뷔 이후 두 번째로 많은 공격포인트를 해냈다.
금호고 재학시절 고창현은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내며 '초고교급' 선수로 평가받았다. 고교 선배인 윤정환, 고종수의 대를 이을 재목이라는 극찬이 늘 따랐다.
김호 감독이 이끌던 수원에 입단한 2002년, 20세 이하(U-20) 대표팀에 선발돼 아시아 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끄는 등 소위 '잘 나가는' 선수 대열에도 합류했다.
그러나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다 보니 부상이라는 악재가 찾아왔다. 2003년 스승 김호 감독이 수원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고창현의 시련은 더욱 깊어졌다. 차범근 감독 체제에서 주전 자리를 찾지 못했고 2005년 부산 아이파크로 트레이드되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부산에서도 그가 원하던 축구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슬럼프에 빠져들었고 그는 2007년 상무 입대를 선택했다. 정신을 차려보겠다는 의미의 입대였고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재기도 노렸다.
2년의 군복무 뒤 전역해 2009년 대전 시티즌의 유니폼을 입었다. 김호 감독과 재회한 그는 날아다니며 12골 3도움으로 비상했다. 올 시즌 중반엔 울산으로 이적해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울산에서 주축으로 자리잡은 그에게 대표팀 발탁이라는 선물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정식으로 성인대표팀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이다.
조광래 감독은 생존경쟁이 진행되는 상황이라 선수 평가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고창현에 대해 "주의 깊게 지켜보니 상당히 괜찮아 보인다. 코칭스태프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긴 시련을 겪었지만 분명한 것은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라며 칭찬을 선사했다.
고창현은 25명의 예비엔트리 중 선참급에 속한다. 그는 "나이도 있고 하니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보여주겠다"라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