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박지성의 10년은 2000년대 한국축구의 역사다.
1999년 올림픽대표팀의 테스트 선수로 시작한 박지성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한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우뚝 섰다.
박지성은 2000년 4월 25일 라오스와의 아시안컵 1차예선 경기를 통해 A매치에 데뷔했다. 올림픽대표팀을 함께 맡고 있던 허정무 A대표팀 감독은 약팀 라오스를 상대로 젊은 선수들을 내세웠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출전한 박지성은 풀타임을 뛰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경기에서 김은중과 설기현이 각각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천수 역시 통통 튀는 플레이로 1골을 넣었다. 9대0 대승이었다. 스포트라이트는 공격수들에게 집중됐다. 아무도 박지성을 주목하지 않았다. 초라한 A매치 데뷔전이었다.
이후 박지성은 체력이 좋고 활동량이 많지만 기술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박지성은 늘 퇴출대상 1순위로 꼽혔다. 하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은 다르게 생각했다. 박지성의 공격 본능을 발견했다. 2002년 5월 21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평가전 때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을 윙포워드로 놓았다. 실험이었다. 박지성은 1-0으로 지고 있던 후반 6분 동점골을 넣었다. 5일 뒤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박지성은 전반 26분 다시 한번 골을 터트렸다.
모두가 박지성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박지성은 6월 14일 포르투갈과의 D조 조별리그 3차전 후반 25분 결승골을 터뜨렸다. 한국축구의 중심에 살짝 한 발을 얹는 순간이었다.
박지성은 에인트호벤(네덜란드)과 맨유를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A대표팀의 에이스 자리는 안정환과 이천수가 이어받았지만 박지성은 꾸준했다. 2006년 6월 18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독일월드컵 G조 조별리그 2차전은 박지성을 통해 한국 축구의 에이스가 됐다. 0-1로 끌려가던 후반 36분 박지성은 조재진의 헤딩 패스를 받아 감각적인 오른발슛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이 골 한방으로 전 세계가 박지성을 주목했다.
2007년 2월 부임한 허정무 감독은 에이스 박지성에게 주장 완장을 채웠다. '캡틴 박'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간의 소통을 강조하는 '박지성 리더십'으로 팀을 지휘했다. 이청용 박주영 등 후배 선수들의 멘토(조언자)가 됐다. 중요한 순간에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2009년 2월 11일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과의 2010년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후반 36분 동점골을 넣었다. 4개월 뒤인 6월 1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리턴매치에서도 환상적인 동점골을 쏘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둔 2010년 5월 24일 일본 사이타마월드컵경기장에서는 경기 시작 6분 만에 결승골을 넣었다. 6월 12일 그리스와의 월드컵 B조 첫경기에서는 후반 7분 쐐기골을 박아넣었다. 한국축구의 아이콘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